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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용팔이들 – O2O가 만들어갈 투명한 창업시장을 꿈꾸며

용팔이와의 첫 만남

 

20년쯤 전에 용산에 가서 빨간 카세트를 구매한 적이 있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라 돈도 없을 때라서 이런저런 알바를 해서 모은 돈으로 큰 마음먹고 산 것인데 3주 만에 고장이 나버렸다. 바로 들고 찾아갔더니 알아듣지 못하는 이런저런 말을 하더니 수리비 4만 원을 내고 1주일 뒤에 가지러 오라고는 말을 퉁명스럽게 던지고 다른 급한 일이 있는 듯 자리를 떴다.

나는 무언가 찝찝했지만 딱히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는 시세 3만 원이나 비싸게 샀고 무상 AS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내 돈 내고 수리를 한 것이었다. 용산을 홀로 어리바리 돌아다니던 나는 용팔이 들이 볼 때는 그냥 오리지널 호갱님이었던 것이었다. 그 뒤로는 두 번 다시 용산 전자상가에는 가본 적이 없다.

화가 나기도 했었지만 그보단 이런 방식의 불투명한 상거래가 너무 싫었다. 가격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여러 가게들을 돌아보고 그중에 괜찮은 가격을 부른 곳에 들어가서 또 협상을 해야 하는 그런 과정이 너무 비합리적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10년이 흐르고 변한 용산

 

몇 년 뒤 인터넷이 보급되고,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되면서 용팔이들은 직격 타를 맞았고 이젠 더 이상 그들은 기존의 방식으로 장사를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이미 가격과 기기에 대한 정보는 모두 오픈되어있고 고객은 가장 저렴하면서 서비스도 잘하는 곳을 찾아서 구매를 하게 되었으니 주먹구구식으로 장사하던 사람들은 자연스레 퇴출되었다.

 

O2O가 바꾼 세상

 

 

한동안 스타트업에서 가장 주목받던 O2O 서비스는 주로 간편함으로 무장한 온디멘드 서비스 등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지만 나는 O2O가 가지는 보다 큰 가치는 정보 불균형을 타파하고 투명한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잘라봐야 속을 알 수 있는 레몬과 같다해서 레몬 마켓으로 불리는 중고차, 부동산 등이 대표적으로 정보 불균형이 심한 시장이었는데 최근 헤이 딜러나 직방 등을 통해서 중개상을 굳이 거치지 않아도 필요한 정보를 얻어서 거래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제자리인 창업시장

 

그러나 여전히 정보를 어느 한쪽이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시장이 있는데, 바로 창업시장이다. 대다수의 창업자들이 처음 창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많은 창업자들을 만나본 경험상 직장에서 아무리 잘 나갔던 사람이라도 창업 시장 앞에 서면 생 초짜 호갱님이 된다. 마치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처럼 말이다. 그런데 나는 십여만 원을 들고 있는 호갱이었지만 창업 희망자는 최소 수천만 원 이상을 들고 있는 호갱님이다.

 

수천만 원을 들고 있는 초짜!!!

대부분 인정을 안 하려 하지만 사실이다. 회사에서 잘 나갈수록 자신의 직무에 최적화되어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그 영역을 제외하면 아주 초보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필자도 외식 창업 시장에서 14년을 종사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모르는 것이 많아지는 느낌이 든다)

정보의 차이가 크면 그 간격을 메우기가 참 어렵다. 또한 창업 시장의 이해관계자들이 가져가는 마진이 워낙 크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정보는 잘 공개되지 않는다. 기껏해야 장비 가격 – 기기는 품질의 차이가 없는 상품이기 때문에 숨길수가 없는 것이 원인 – 만 오픈이 되어있다 보니 창업자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게 어떤 커피 머신을 얼마에 살지 고민하는 것이다.

창업하고 성공하려면 고민할 것이 얼마나 많은데 장비를 구매하는데 이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나? 창업의 성공과 커피 머신은 거의 연관성이 없다.

 

 

용산에서 속지 않으려면?

 

내가 용산에 갈 때 속지 않으려 했다면 용산에서 전자기기를 많이 사본 형과 함께 갔어야 했다. 고수들끼리는 서로 눈만 맞추져도 안다. ‘아, 이 사람은 우리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구나’ 그리고 장난 칠수가 없어진다. 때문에 창업을 생각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할 일은 자신을 도와줄 해당 영역의 경험이 많은 자를 찾는 일이다.  이런 사람이 프랜차이즈 본사 담당자와의 미팅에만 동석해도 비교적 투명한 대화가 가능하다. 아마 밥 한 끼 가격으로 수백만 원을 아낄 수도 있을 것이다.

 

 

O2O로 만드는 투명한 창업시장

 

개인적으로는 사람을 통하는 것보다 더 좋을 것이라 생각하는 방법은 O2O가 창업시장에도 적용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소수가 독점하던 창업 시장의 정보들을 오픈하고 투명한 상거래를 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대가 바뀌며 용팔이가 없어진 것처럼 창업 시장에 있는 사람들은 다 사기꾼 같다는 오명도 벗을 수 있을 테고 말이다.

 

주변에도 이런 노력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적어도 젊은 대표님들이 그러한데, 투명한 기준을 만들어도 그 목소리가 고객에게까지 닿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안타깝다. 광고 홍보 등의 노이즈 때문에 선한 목소리가 널리 퍼지질 않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업 시장의 투명성을 위한 노력은 끊임없이 되어야 하며, 시장을 뒤흔드는 파괴력 있는 O2O 서비스가 한번 나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